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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얼중얼

오이디푸스 왕과 올드보이의 오대수

by 키미~ 2022. 2. 12.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아버지 라이오스의 악행이 먼저다.

이 비극은 오이디푸스 왕에 대한 저주의 신탁이 항상 부각되어

오이디푸스를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혼인한 참혹한 운명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라이오스는 제우스도 반한 펠롭스의 아들 크리시포스를 강간하는 죄를

오이디푸스를 낳기 전에 저질렀다.

치욕을 견디지 못한 크리시포스는 자결하고 아버지 펠롭스가 태어나지도 않은 오이디푸스에게 저주를 내린다.

비극의 시작이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참회를 하지 않고 라이오스는 아들을 낳고 잔인하게 버린다. 

라이오스는 낯선 남자인 오이디푸스의 분노를 자극하고 그에게 죽는다. 

스핑크스의 문제를 풀고 테베의 왕이 되어 어머니와 결혼하여 자녀를 낳는 오이디푸스.

결국 모든 사실을 알고 자신의 눈을 찌르는 오이디푸스.

그렇다면 오이디푸스는 운명에 굴복한 것인가. 운명에 대항한 것인가.

 

올드보이의 오대수는 학창 시절 우연히 본 근친의 장면을 떠벌이면서 그의 비극이 시작된다.

그가 자신의 혀를 자르는 것과 오이디푸스가 눈을 찌르는 것은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르다.

오대수는 자신의 잔인한 운명이 혀에서 시작되었으니 말 자체를 하지 않겠다고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고, 

오이디푸스는 이 모든 비극을 보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죄를 참회하겠다는 의미다.

두 사람 다 자살하지 않고 살아서 운명을 이겨나간다는 의미에서 해석해도 좋겠다.

보지 않는 것과 말을 못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견물생심이라고 했다. 사람은 보는 것에 욕망을 가진다고 한다. 

그런 뜻에서 오이디푸스 왕은 자신의 눈을 찌르면서 자신의 욕망의 근원을 없앴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래도 상상은 할 수 있다. 안 보이기 전의 세상을 봤기 때문이다.

선천적으로 보지 못하면 상상도 불가하다.

물론 말을 하지 못하는 것도 슬픈 일이다. 그러나 볼 수 있으므로 상상은 할 수 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삶을 산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일 것이다.

자꾸 미디어가 결정하는 상상의 세계로 삶이 한정되어 문득 불안해진다.

보이는 것을 믿을 수 없고, 들리는 것에 확신할 수가 없다.

눈이 있으되 보이지 않고, 혀가 있으되 말을 할 수 없는 상상의 굴레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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