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sunflower
  • sunflower
중얼중얼

사월하고 일곱째 날

by 키미~ 2022. 4. 7.

 

 

해마다 4월이면 박목월 선생의 사월의 노래와 크리스 데 버그의 사월의 눈동자를 가진 소녀가 떠오른다.

사월의 노래는 여고시절 음악시간에 배워서 높은 음이 안 올라가 고생했던 기억과 더불어,

박목월 선생과 악수하며 어줍짢게 시쓰기를 시작했던 기억.

사월의 눈동자를 가진 소녀는 제목이 너무 좋아서 나중엔 멜로디가 좋아서, 더 나중엔 음울한 가사가 아름다워서 좋아했던 곡이다.

정일근 시인의 4월에 걸려온 전화란 시도 4월이면 생각나는 것 중 하나이다.

 

사월에 걸려온 전화 / 정일근

 
사춘기 시절 등굣길에서 만나 서로 얼굴 붉히던 고 계집애
예년에 비해 일찍 벚꽃이 피었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일찍 핀 벚꽃처럼 저도 일찍 혼자가 되어
우리가 좋아했던 나이쯤 되는 아들아이와 살고 있는,
아내 앞에서도 내 팔짱을 끼며, 우리는 친구지
사랑은 없고 우정만 남은 친구지, 깔깔 웃던 여자 친구가
꽃이 좋으니 한 번 다녀가라고 전화를 했습니다.

 

한때의 화끈거리던 낯붉힘도 말갛게 지워지고
첫사랑의 두근거리던 시간도 사라지고
그녀나 나나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우리 생에 사월 꽃잔치 몇 번이나 남았을까 헤아려보다
자꾸만 눈물이 났습니다

 

그 눈물 감추려고 괜히 바쁘다며
꽃은 질 때가 아름다우니 그때 가겠다. 말했지만
친구는 너 울지, 너 울지 하면서 놀리다 저도 울고 말았습니다.

 

사춘기 시절은 지나고, 환갑도 지나면 남자와 여자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어쩌다 동창회에 가면 낯선 늙수구레한 얼굴들이 모여 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이 안 변했다느니 흰소리를 하고, 요즘 하는 운동과 먹는 약을 이야기한다.

자녀들 결혼이야기며 때때로 눈물을 찔끔거리며 소복하게 어린 날을 추억하는 동창회.

4월이면 많은 꽃들이 피고 지기도 한다.

목련이 피고, 철쭉이 피고, 개나리, 벚꽃 등 온 땅이 꽃으로 가득찬 봄의 나라.

마을의 어르신들이 알록달록한 옷들을 입고 나들이 가는 사월

이제 나도 어느새 그 나이가 되어 나들이에 낄까 말까 망설인다.

 

꽃구경 / 김정희

 

해마다 사월이 오면

철없는 벚꽃이 피기도 전에

들판에 검정 고랑 만들던 늙은 아낙들

새벽부터 마을회관 앞마당에 모여서 꽃놀이 간다고 성화댑니다

삐걱대는 관광버스 턱하니 세워놓고

오래된 허리 얼버무리며

읍내 장에서 산 오천 원짜리 누비똥 가방 옆에다 차고

입술엔 사흘 동안 지워지지 않는다는 그 유명한 양키시장 빨강 립스틱

 

운전기사 옆자리에 낭창하게 앉아서

요란 떨며 껌 씹던 덜 늙은 안내원이

할머니 효도신발이 편하기는 합니까요?

그 소리에 소스라친 말순 여사

지나 내나 비슷한 또래구만은 빨강 입술 비죽거리고

지는 안 늙나? 분녀 할머니 새초롬이 눈 흘기는 

시절은 수상타

꽃바람 콧구멍에 온종일 불어대는 사월이면

인생의 꽃 진지 오래된 아낙들이

행여나 올해가 끝일까 하여

오래도록 단장하고 꽃구경 갑니다

 

 

그 사월이 벌써 일곱째 날이다.

봄 향기 가득한 사월 행복하게 보내세요.

 

 

 

'중얼중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달래 피고, 새가 울면은  (0) 2022.04.16
허난설헌 생가의 봄  (0) 2022.04.10
오래 산다는 것  (0) 2022.04.01
이찬원의 애국가  (0) 2022.03.30
세상으로 나온다는 것  (0) 2022.03.3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