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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버려둔 자신을 위해서

by 키미~ 2011. 1. 2.

 

 

둥근 섬

 

 

월급 전날까지

지갑에 돈 이만 원만 남아 있으면 좋겠다는 아내에게

나는 그 잘난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따뜻한 시 한 줄 써 주지 못하고

소리 없이 이십 년을 살아왔네

잘게 반짝이는 밥풀 진주 하나

손마디에 묶어 주지 못하였네

그러나 아내는 알고 있으리

저 어두운 바다에 떠 있는 둥근 섬에는

작은 소라게의 야무진 꿈이 술렁이고 있음을

무성한 달빛 껴안으며

모시조개의 사랑이 움트고 있음을

 

십수 년 셋방을 전전하던 이력을 싸 들고

단계동 네거리 근처 거센 물살 헤치며

당당하게 닻을 내렸지

무시로 날아드는 이웃들의 날선 얼굴을 향해

한 줄기 미소를 날려 보내곤 아내는

흔들리지 않았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지

융자받고 전세 내어 지은 건물 한 귀퉁이에 살면서도

아이들이 주인 눈치 안 보는 게 어디냐고

모두들 무럭무럭 자라 제 발로 학교에 다니는

우리 만한 부자 세상에 어디 있냐고

어깨에 힘주고 있는 아내여

가슴으로 싱싱한 갈매기의 울음소리

콸콸 봇물처럼 지나가는구나

 

중앙시장 저잣거리의 파장 무렵

풀이 죽은 애호박 몇 덩이가

천근의 무게로 남아 있던

어느 시골 할머니 좌판 앞에서

차곡차곡 모아 가지고 간 비닐봉지들을 건네주며

눈물 글썽이며 앉았던 당신에게

나는 아직도 부끄러워 할말이 없는데

 

새벽녘 출항했던 아이들도

휘파람 날리며 돌아와 귀항의 깃발을 내걸고

잔잔한 물결이 우리들의 섬을

둥글게 감고 흐르는 밤

오늘도 육중한 부업용 재봉틀 앞에 앉아

힘겹게 페달을 밟는

그대의 어깨 너머

눈여겨보아 둔 백조좌의 작은 별 하나

빙긋이 웃으며 은하수를 건너고 있다.

 

 김종호(2010, 시안, 둥근 섬)

 

 

 

제가 좋아하는 시인의 시 한 수 올리면서

새해를 맞이할까 합니다.

가난한 시인들은 늘 아내에게 미안하고,

방황하고 흔들리다 다시 詩로 돌아오는 이 시대의 남아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늘 지나간 시절은 안타깝고,

곁에 있는 시간에겐 무심한

오랫동안 내버려 둔 우리 자신을 위해서

새해 정겹게 시작해 볼까요?

 

 

치악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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