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사철 눈 오는 겨울의 은은한 베틀 소리가 들리는
아내의 나라에는
집집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마을의
하늘과 아이들이 쉬고 있다.
마른 가지의 난동(暖冬)의 빨간 열매가 수실로 뜨이는
눈 내린 이 겨울날
나무들은 신(神)의 아내들이 찐 은빛의 털옷을 입고
저마다 깊은 내부(內部)의 겨울바다로 한없이 잦아들고
아내가 뜨는 바늘귀의 고요의 가봉(假縫),
털실을 잣는 아내의 손은
천사에게 주문받은 아이들의 전샹애(全生涯)의 옷을 짜고 있다.
설레이는 신(神)의 겨울,
그 길고 먼 복도를 지내 나와
사시사철 눈 오는 겨울의 은은한 베틀 소리가 들리는
아내의 나라,
아내가 소요하는 회잉(懷孕)의 고요 안에
아직 풀지 않은 올의 하늘을 안고
눈부신 장미의 알몸의 아이들이 노래하고 있다.
아직 우리가 눈뜨지 않고 지내며
어머니의 나라에서 누워 듣던 우뢰(雨雷)가
지금 새로 우리를 설레게 하고 있다.
눈이 와서 나무들마저 의식(儀式)의 옷을 입고
축복 받는 날,
아이들이 지껄이는 미래의 낱말들이
살아서 부활하는 직조의 방에 누워
내 동상(凍傷)의 귀는 영원한 꿈의 재단,
이 겨울날 조요로운 아내의 재봉(裁縫) 일을 엿듣고 있다.
—김종철,「재봉(裁縫)」(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심사위원 : 박남수,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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