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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도둑, 한로(寒露)

by 키미~ 2014. 9. 12.

 

 

한 로 (寒 露)

                              

 

                                    김정희

 

 

 

 

 

 

윗마을의 항우장사 최순덕 여사

 

 

사시사철 빨강 내복 하나로 굳건히 견디며

 

,

이 집 일 저 집 일 수시로 돈 벌어 이천 평 너른 밭에 고추를 심었다네

 

 

하나 일군 자식은 늙다리 팔삭 동이

 

 

마음 하나는 최고인데 초상집에서도 웃는 놈이라

 

 

쌔빠지게 모은 돈 이천 만원에 합의 본

 

 

손녀 같은 베트남 며느리를 열심히 가르친다

 

 

이년아, 하모니가 아니고 시어미다

 

 

하루에도 열 두 번씩 고추 말리는 하우스 안에서

 

 

하마나 점심 먹어라 부를까 싶어 빨강 고추 속에서 기다려 보문

 

 

하우스 문 열고는 코를 감싸쥐고

 

 

하무니, 하무니, 전신! 전신!

 

 

빨강 고추 말리던 빨강 내복 최순덕 여사

 

 

지랄헌다. 하모니가 아니고 시어미다 이년아

 

 

육중한 몸 일으켜 장하게 나오신다

 

 

고추보다 더 빨갛게 잘 익어 나오신다.

 

 

 

 

 

 

깨도둑

 

 

 

오래 전 할아버지 날 붙들고는

니 애비는 도둑이다, 하셨네

 

 

어느 볕 좋은 가을날 추수한 논에 쌀알이라도 주워 볼까 어정거리고 있었는데

깨밭의 도리깨질 하던 젊은 아버지의 힘찬 팔뚝이 펄떡거리며 가을날을 어지럽히고 있더라는 것이요

키질하던 나의 어머니가 쌩긋이 웃으며 말똥말똥 아버지를 연하게 쳐다보고 있더라는 것이요

그거로는 어림없소, 도둑의 까닭을 밝히라 성화대니

할아버지 빙긋이 웃으며,

긍게 니 얼굴을 봐라이,

니 얼굴이 깨 천지여!

이빨 빠진 입 오물거리며 헹헹 웃더이다.

무릎 바투며 깨낯짝을 치키들고

그럼 아부지를 낳은 할부지는 뭐당가요?

할부지 성근 수염 어루만지며 힝 하더니,

 

 

나는 깨 도둑은 아녀, 니 애비가 수수하게 생겼응께.

 

 

 

 

본디 자기 시는 졸시라 하옵니다.

졸시를 이렇게 올려 놓고는

천연덕스럽게 나대는 꼴이라니...

나이가 들어도 헛살았습니다.

부디 혜량하옵소서.

 

 

치악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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