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리를 지나며
두물머리, 經由地의 經由 地點, 마흔일곱 번째 이 별을 찾아왔다는 한 사내의 말을 믿는다면 한평생 고기잡이나 하면서 이곳을 지켰을 내 전생의 기억 때문일까 이생의 고향만큼 낯익어 보이는 풍경들이 나를 자주 불러들이는 곳 그 넓은 가슴으로 세상을 받아주던 연잎도 시든 채 오체투지로 엎드려 강변의 부유물로 출렁거리고 변덕 심한 사람들의 발길도 뜸한 한낮 어제의 물이 오늘의 물을 막아서지 않고 오늘의 물이 내일의 물을 두려워하지 않는, 흐름의 몸짓도 없이 흘러가는 강가에 섰다.
카르마[業]의 마야[幻], 한 번도 본 적 없고 죽는 날까지 만나지 않아도 내 삶의 곁가지 끝의 시든 이파리 하나 어찌할 수 없는 사람들이 명절날 귀성길 기차표 구입 창구에 줄서 있는 사람들 틈에 끼어들 듯 태평양 심연에 잠자고 있던 내 분노와 설움을 일깨울 때면 어김없이 내 안으로 흘러드는 강물, 늘 줄서 있으면서도 순번으로 우열을 가린 적 없고 양구 주민의 설거지 하던 물과 정선 주민의 몸 씻은 물이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품어주는, 다 흘려보내고도 限없이 恨없이 오늘의 물로 충만한 강물, 정작 찾아와 마주한 내겐 언제 보았느냐는 듯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무심한 강물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는 아득한 하늘가에 철새 한 무리 강을 건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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