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하다
김정희
새벽에 일어나 연탄을 갈다
두개골에 섞인 불순물의 농도만큼
다 탄 연탄재는 벌건 얼굴을 하고 있다
살아 있는 입안에 잠긴 질긴 말(言)들조차
오래전 연탄의 목숨 길이를 따라갈 수 없었다
밥과, 된장과, 수많은 볶음을 승화했던
세탁기에 맡긴 삶아야 할 욕지기와
전기밥솥에 맡긴 푸르딩딩한 자책들이
부끄럽게 우리의 목줄을 죄는데,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뛰쳐나와야 할 목소리가 잠긴 새벽
길다란 집게로 목숨을 복제하는 21세기의 연탄
도피한 기술자의 비루한 농담처럼
쥐어짜는 전기는 스위치 하나면 끝
그 모든 것들도 손가락 하나면 끝
그러나 그 언저리 추레한 지붕 끝으로
가난하고도 슬픈 우리의 연탄은 살아있다고.
질식된 오늘의 틈에서도 살아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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