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안 (慰 安)
김정희
길을 걷다가
문득 돌아 본 그 곳에
버려진 나의 꿈들이 있다.
그것들은 구겨지고, 찢어지고, 부서져, 처음의 그것인지 알아 볼 수 없다.
소리를 내어 불러본다. 한 조각이 쓰레기통에서 대답한다.
더러워 주울 수 없다.
다른 한 조각은 전봇대 위에서 내려다본다. 너무 높아 올라갈 수 없다.
핑계를 어깨에 짊어지고, 앞에서 무심히 바라보는 한 조각을 집는다.
작고, 야윈 모습으로 그는 서 있다.
모르는 척 얼굴을 돌린 채, 우리는 함께 집으로 간다.
내가 아플 때 그는 직장에 나가고, 내가 귀찮을 때 그는 대신 밥을 먹는다.
내가 비굴하게 숨어 있으면, 그가 나서서 죽도록 맞는다.
심장이 조금씩 사라진다.
거부하던 나의 동맥은 어느 새 그를 편안하게 받아들인다.
지하실 귀퉁이에
부서진 나의 꿈 조각들이 버려져 있다.
그들은 언제든 일어설 수 있다고 다짐하지만
스스로 걸어 보지 못한 지 오래 되었다.
가끔, 그가 나를 본다.
한차례 호통 친다.
다독거린다.
그리고 나를 다시 잊어버린다.
더 이상 나는 꿈을 꾸지 않는다.
꿈은 나를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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