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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얼중얼543

친정 어머니 10주기 친정 어머니 10주기 기일이다. 벌써 10년이 되었다. 세월이 훅 한 번에 지나갔다. 10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엄마를 보내고 거의 1년을 기도할 때마다 울었다. 엄마의 고단한 세월이 안타깝고, 아버지가 엄마 소식을 자꾸 보채시니 슬프고...치매라 모르시지 싶었는데, 문득 아시더라. "너의 엄마 먼저 갔나?""네"그 다음부터 묻지 않으셨다. 그 후 아버지는 4년 더 계셨다. 부모님이 안 계신다는 것은 때때로 큰 절망이다. 나를 온전히 칭찬하는 분도, 나의 슬픔을 온전히 다 이해하는 분도, 나의 투정을 온전히 받아주는 분도 부모님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는 바다 한 가운데 겨우 버티고 있는 작은 섬이 되었다. 2021. 8. 2.
위대한 반계리 은행나무 문막의 반계리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보호수다. 약 80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어제 남편이 책을 쓰는데 필요하다고 해서 함께 갔다. 장대하고 웅장한 나무를 보는 순간, 인간의 쓰잘데 없는 고민따위 참으로 하찮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말이 팔백 년이지, 백 년도 못 사는 인간 누구도 그 세월의 무게를 가늠할 수 없다. 가을이면 노란 은행잎이 사방에 떨어지면서 장관을 연출한다. 한여름 뙤약볕이라 사람이 없었다. 온전히 남편과 나만 나무와 마주한 시간이었다. 가을이 오면 사람들이 마구 몰린다고 한다. 그런데 마을 입구의 진입로가 문제다. 좁다. 예전엔 아마도 논밭이었을 건데, 지금은 양쪽으로 집이 들어서서 아주 난감하다. 그나마 은행나무 주변은 넓어서 다행인데, 마을 사람들의 민원이 끊.. 2021. 7. 27.
엄마의 숟가락 숟가락에도 표정이 있다. 숟가락이 무거워 보이면 밥 먹기가 귀찮은 거다. 숟가락에 관한 여러 구절들이 있는 이유도 아마 그런 것에 기인한 것일게다. 밥 숟가락 놓는다. 숟가락 들 힘도 없다. 그 중에 제일 유머스러운 말이 "남자가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바람 피운다."이다. 어느 날, 아침 드라마 보시던 엄마의 일갈 "남자가 문지방 넘어갈 힘만 있어도 바람 피운다더니.." 하셨다. 숟가락이 문지방으로 바뀐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의 의식주 문화가 많이 바뀐 탓이겠다. 사진의 숟가락은 친정 엄마가 쓰시던 숟가락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지금은 내가 쓰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친정엄마 좀 까다로우신 양반이셨다. 아버지야 워낙 불같은 성미라 그러려니 했지만 엄마도 못지 않았다고 여동생이랑 가끔 웃는다. .. 2021. 7. 24.
여름 속으로 ~ 겨우내 거실에 있을 때, 꽃이 피지 않던 군자란이 햇빛을 조금 먹고는 만발을 했다. 이렇게 환하게 핀 것은 드문 일이다. 그저 몇 송이 피고 져버리곤 했었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햇빛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남편이 거실 앞쪽에 공방을 만드는 바람에 햇빛이 거실에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여름엔 서늘해서 괜찮은데, 겨울엔 좀 스산하다. 통유리로 비쳐드는 햇살이 가끔 그립다. 원추리는 나팔을 위로 해서 벌어지고, 나리는 줄기에서 다시 꽃대가 나와서 아래쪽으로 벌어진다. 참나리는 예전에 아주 어릴 적에 외갓집에 가면 논두렁에 피어서 애를 태웠다. 이쁜 꽃이 있어 갈려고 하면 논두렁이 좁아서 다가가기가 힘들었다. 늘 멀리서 보고 저 꽃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었던 꽃이다. 키가 불쑥하니 크면서 꽃대가 길쑴하니 탐스.. 2021. 7. 18.
금계국, 그러나 코스모스를 생각하며 마을에 금계국이 한창이다. 코스모스와 거의 비슷하게 생겼는데, 일률적인 금색이다. 순간적으로 와 이쁘다~ 했다가 금방 꽃을 들여다보는 걸 놔 버린다. 이와 달리 코스모스는 색깔이 섞여 있어 아무리 봐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어릴 때, 우연히 어떤 콜타르 공장을 들여다 본 적이 있다.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하다가 그리로 숨었던지 무슨 까닭이 있었겠지. 그런데 그 검은 콜타르 속에 하늘하늘 분홍 코스모스가 피었더라. 환경오염은 아직 생각지도 못했던 그 때,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동네 한 귀퉁이에 콜타르 공장이 있었다. 큰 드럼통 가득하던 콜타르, 그 검은 액체가 흘러나와 땅이 온통 검은 색이었다. 꽃은 그 검은 땅에서도 피어나 그 어린 나이에도 왠지 마음이 아팠다. 검은 땅 속에 힘찬 뿌리를 내리고 굳.. 2021. 6. 23.
장미, 작약, 양귀비 분명히 햇살은 찬란한데 바람이 서늘해서 꼭 사막 날씨 같으다. 마을 입구의 한약방 밭의 작약이 한창으로 피었다. 분홍장미는 읍내 중국집 마당의 장미, 빨강 장미는 우리 집 장미다. 작년에 추워서 큰 줄기는 다 얼어 죽고, 다시 싹이 나는 장미에서 피었다. 이사 온 첫해는 어찌 그리 장미가 장하게 피었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그 때가 더 추웠던 것 같은데... 월요일 종강하면 기말고사 치르고 성적 내면 학기가 끝난다. 한 학기 동안 수업하면서 답답한 점도 있었지만 한 편으로는 수업준비를 더 알차게 했다. 아직 결정나지 않았지만 다음 학기에는 전공은 대면수업을 할 수 있지 싶다. 기대를 해 본다. 2021. 6. 4.
오시다 한참은 된 것 같으다. 갓바위 갔다가 등을 달고 온 때가. 부처님 오신 날이면,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생각이 무척 많이 난다. 엄마는 돌아가실 때 대세를 받으시고 마리아가 되셨는데, 큰 아들 바오로의 뜻대로 하셨다. 늘 절에 가시고, 신심도 두터워, 세례를 받아도 괜찮겠냐고 물어봤더니 어머니 말씀이 "다 하나다. 가는 길이 다를 뿐이야." 이셨다. 엄마 돌아가시고, 성당에 기도를 넣고, 가시던 절에서 49재를 올렸다. 생전에 엄마와 약속했더랬다. 어느 날, 내가 결혼하기도 전에, 당신이 가면 누가 49재를 해 주겠냐고 하시더라. 내가 해 드릴께. 무심코 말했었다. 절의 주지스님이 간밤에 황보살님이 절 마당을 한 번 휘 돌아보시는 꿈을 꿨는데, 하신다. 다녀가셨어요? 요즘은 내 꿈에도 안 나오시네. 보고 싶.. 2021. 5. 19.
분명 있긴 한데... 목단 피었다. 유월이 오기 전에 모란이 핀다고 영랑이 외쳤는데, 오월에 피었네. 화상강의는 수강 인원이 적으면 얼굴을 컴 화면에서 다 보면서 할 수 있겠는데, 인원이 60명이나 되니 페이지를 넘겨야 하고, 출석을 부르고 나면 학생들이 카메라를 꺼 버린다. 음소거도 한다. 혼자서 계속 이야기한다. 가끔 질문을 하면 그때서야 어디선가 낯선 목소리가 툭 나온다. 중간에 켜 놓기만 하고 사라지는 녀석도 있다. 어제는 수업 하다가 툭 던져 봤다. "가끔 리액션이라도 좀 해 주면 안 돼? 너무 답답해~!!" 어떤 녀석이 웃는다. 그러고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네~~~~~~~!!!" 귀여운 녀석들. 2021. 5. 12.
으름장을 놓다 으름꽃이다. 뒷 마당에 으름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넝쿨이 이쁘고, 잎사귀가 상큼하다. 꽃이 피었다. 으름장을 놓다는 으름이라는 명사형에 장이 붙어서 '상대편이 겁을 먹도록 무서운 말이나 행동으로 위협하는 짓'을 의미하는데 얼르다에서 왔다. 으름꽃은 으름이라는 말이 아마 열매라는 언어에서 유래했을 것 같은 생각이다. 으름은 한국바나나로 불리는 하얀 열매가 달린다. 씨는 먹으면 맛이 없더라. 열매가 달리면 다시 한 번 올려 보자. 꽃이 아름답다. 꽃 이름을 보다가 생각이 났다. 으름으름 해 보라. 그 이름이 얼마나 귀여운지...하이고..이뻐라. 2021. 5.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