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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가리 아침가리 김정희 먼 바다에서 돌아와 빈 땅의 숨결을 추녀 끝에 말리는 나의 아버지. 아침이면 끝나는 그가 사는 나라의 하루는, 반나절 접으면 해가 지고, 산 그림자가 끝나는 들판 저 끝에서 저녁이 온다. 높다란 지게에 햇빛을 짊어지고, 장작 빠개지는 결 따라 심장을 쿵쾅거리며 도끼질 하는 아버.. 2009. 12. 13.
대 설 (大 雪) 대 설 (大 雪) 김 정 희 눈이 옴팡지게 쏟아지는 날. 생솔 넣어 눈 매운 부뚜막에 쪼그리고 앉아, 쪼글한 얼굴을 노골노골 녹이던 치매 걸린 동배 영감. 뾰족 구두 신고 나들이 가는 작은 마누라 보더니, 부지깽이 치켜들고 새 옷 입은 등짝을 후려갈기네. 펄펄 날던 젊은 날에 뒷방 신세 된 큰 마나님이 .. 2009. 12. 7.
여행자를 위한 서시 , 류시화 "여행자를 위한 서시" 날이 밝았으니 이제 여행을 떠나야 하리 시간은 과거의 상념 속으로 사라지고 영원의 틈새를 바라본 새처럼 그대 길 떠나야 하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냥 저 세상 밖으로 걸어가리라 한때는 불꽃 같은 삶과 바람 같은 죽음을 원했으니 새벽의 문 열고 여행길.. 2009. 12. 2.
별 김 정 희 새벽 빈들에 서서. 십일월의 하늘 한 복판 독을 품고 기다리는 전갈을 본다. 큰 곰도, 작은 곰도, 여왕인 카시오페아도 저만치 물러서서 금빛 화살을 가진 사나이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십이월의 말을 타고 은하수에서 달려오고 있지만, 그가 타고 있는 말의 갈기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전.. 2009. 11. 29.
그때는 걸어서 다녔다. 김광균 그때는 걸어서 다녔다 -김광균- 그때는 걸어서 다녔다 걸어서 다녔다. 통인동 집을 떠나 삼청동 입구 돈화문 앞을 지나 원남동 로타리를 거쳐 동숭동 캠퍼스까지 그때는 걸어서 다녔다. 먼지나 흙탕물 튀는 길을 천천히 걸어서 다녔다. 요즘처럼 달려가면서도 경적을 울려대고 한발짝 앞서 가려고 안.. 2009. 11. 28.
소 설 (小 雪) 소 설 (小 雪) 김정희 한밤중 바람이 창을 두드릴 때 어쩐지 네가 올 것 같아서, 떠나지 않는 바람 등 떠밀어 보내고 달빛으로 내 방을 밝혀두었지. 그리움에 지친 날 몰래 엿보았더냐? 달빛이 지 몸을 아랫목에 뉘이고서야, 이리도 애닮은 네가 온 줄 알았더니. 내가 보낸 그 바람 뒤에 너는 숨어 다녀갔.. 2009. 11. 21.
망 울, 오영수 망울 오영수 세상 살다 보니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된 시점이 머리에 서리가 내리고도 제법 시간이 흐른 뒤였을 게야 흙탕물에서 피어나는 연꽃을 보면 화엄의 세계를 다녀온 듯했다가도 속세로 돌아오면 이내 아수라장 세상 시름 다 받아들이는 바닷물이 그래서 꽃을 피.. 2009. 11. 19.
용소막 성당 용소막 성당 김 정 희 백 년 된 느티나무가 서 있는 용소막 성당에, 백 년 지난 가을이 찾아 왔으니, 그 가을 벗어 놓은 옷 무게가 백 년 된 마당에 가득하구나. 그니 어렸을 적부터 거닐던 마당 한켠엔 소망을 가득 담은 기도하는 소녀. 그 소녀 이제 백 살이 넘었을 터, 주름 없는 얼굴에는 미소가 환하.. 2009. 11. 10.
그 여자네 집, 김용택 그 여자네 집 김용택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 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운 집 어디 갔다가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 속에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 2009. 1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