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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나무 대추나무 김 정 희 이파리 한 잎 나는 일이 저리도 힘들어서야, 오월이 끝나가는 마당 구석에 대추나무 홀로 끙끙대누나. 눈꼴 신 초록이 지천인데, 잎사귀 하나 참새 조동이처럼 겨우 뾰족하다. 눈바람에 시달린 둥치는 쩍쩍 갈라져 메마른 가지 죽은 듯하니, 성질 급한 도끼질에 몇 번이나 가슴 졸였.. 2010. 5. 28.
치악산 성황림 치악산 성황림 김 정 희 목단 붉은 꽃잎 열며 어스름 새벽하늘 한 켠 젖히고 해가 뜨는 치악산 해는 상원사 범종을 울리고 남대봉 소나무에 걸터앉았네. 송화 가루 날리는 산길을 따라 쪽 동백 수줍게 핀 숲을 봐 어수룩한 마음 상원사 대웅전에 남겨두고 몸은 성황림 고개 넘어오는데 신들이 산다는 .. 2010. 5. 22.
한국 문단의 4대 비극/이 승하 시인 한국 문단의 4대 비극 이승하/ 시인 제자 중에 '문예진흥원 창작지원금'이란 것을 받은 이가 있어 시집 출간을 알선하게 되었다. 유명 출판사의 사장님께 편지를 드렸으나 몇 주가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어 전화를 해보았다. 이런 말을 들려주는 것이 아닌가. "시내 대형 서점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2010. 5. 15.
아그배나무 꽃 아그배나무 꽃 김 정 희 우리 집 아그배 앙큼도 하지. 나비도 모른 채, 꿀벌도 나 몰라라, 아침나절 스쳐 간 휘파람새에 마음 팔려, 바람소리 날 때마다 꽃잎 흩날린다. 꽃잎 편지 봄바람에 부쳐놓고 하마나 올까 휘파람새 기다리며 밤에도 온 마을이 환한 분홍 꽃 등불 아그배나무. 2010. 5. 13.
아그배나무 아그배나무 김 정 희 아그배나무가 아이고 배야, 아이고 배야, 깔깔거리며 활짝 웃는다. 웃음소리에 꿀벌 한 마리, 무슨 일인가 들여다보다 달콤한 꽃술에 마음 빼앗겨 저물도록 집에 안 가고, 윙윙거리며 눈짓을 한다. 우리 집 아그배 앙큼도 하지. 나비도 모른 채, 꿀벌도 나 몰라라, 봄날 아침 스쳐 .. 2010. 5. 8.
숲 김정희 숲속에 서서, 키득거리는 산새들에게 물어보았지. 그들이 날아온 태양 저 편의 초록나라 이야기. 여린 날개를 씻는 호수의 맑은 물과, 호숫가 나무 뒤에서 훔쳐보는 작은 사슴들. 은빛 물방울을 튀기며 솟구쳐 오르는 날쌘 물고기. 나풀거리는 꽃잎을 따라 초록의 바람이 사는 그 작은 나라. .. 2010. 4. 27.
지구의 눈물/배한봉 지구의 눈물 배한봉 둥근 것들은 눈물이 많다, 눈물왕국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칼로 수박을 쪼개다 수박의 눈물을 만난다 어제는 혀에 닿는 과육 맛에만 취해 수밀도를 먹으면서 몰랐지 사과 배 포도알까지 둥근 몸은 모두 달고 깊은 눈물왕국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걸 나는 눈물왕국을 사랑하는 사람 .. 2010. 4. 26.
Re:청 보리(수정) 청 보리 김 정희 청 보리 들판에 뛰어놀다가 청 보리 파란색 마음에 물들어, 비누로 복닥복닥 문질러 빨아도 한번 든 파란 물 빠지질 않네. 파란 마음 들킬까 이불 쓰고 누워서 꿈나라 청 보리밭 파란 날개로 파랗게 파랗게 날아갑니다. 2010. 4. 20.
저문강에 삽을 씻고 / 정희성 저문강에 삽을 씻고 / 정희성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일이 끝나 저물어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 2010. 4.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