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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같은 /김종호 벌레 같은 김 종 호 비 개인 오후 채송화 접힌 꽃잎이 펴지지 않는다. 빗물은 깨진 항아리에 구름을 가두고 소금쟁이 한 쌍 접붙여 놓고 논다. 벌레들도 뜨겁게 사랑을 하는구나 툭툭 물방울을 털어 내는 풀잎, 풀잎이 흔들릴 때마다 반짝이는 하늘이 무심하게 가슴을 옥죄어 온다. 아름다움에 젖어 있.. 2010. 8. 28.
강원도 찰옥수수 강원도 찰옥수수 김 정 희 옥수수 훌쩍 다섯 뼘은 넘어도 실한 놈은 겨우 한 개 그나마 도시 사람 슬쩍 서리하고 남은 놈은 이름값도 안 나오네. 칠레에서 들여오는 강원도 찰옥수수. 우리나라 좋은 나라 종자로는 옥수수 잘아서 못 쓴다고 사람들은 큰 것만 좋아해. 강원도 옥수수 여물지도 않았는데, .. 2010. 7. 24.
소서 소서 김 정 희 도로보다 낮은 집, 자살한 여배우 살아 웃고 있는 신문지로 발라 놓은 쪽문 거나하게 열고, 할머니 달리는 버스를 멀건이 쳐다본다. 하나, 둘, 오토바이 하나, 자전거, 트럭, 다시 버스 하나 정류장에 선다. 버스 창밖 멀건이 바라보던 나와 눈이 마주친다. 할머니, 히죽 웃는다. 이빨이 하.. 2010. 7. 7.
갈매못 성지에서 갈매못 성지에서 김 정 희 바다가 보이는 갈매못 성지에서 순교한 이들의 믿음을 본다. 세상에 나와 목숨 쉬 내 주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이냐고, 손톱에 가시 하나 박혀도 엄살이 태산인 좁은 믿음을 가진 나에게 묻노니, 그들의 삶을 내어준 바닷가에서 머리카락 한 올도 아까워 버리지 못하는 너의 .. 2010. 6. 25.
갈매못 성지 갈매못 성지 김 정 희 바다가 보이는 갈매못 성지에서 순교한 이들의 믿음을 본다. 세상에 나와 목숨을 내 주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이냐고, 손톱에 가시 하나 박혀도 엄살이 태산인 좁은 믿음을 가진 나에게 묻노니, 그들의 삶을 묻은 바닷가에서 머리카락 하나도 버리지 못하는 너의 신앙은 무엇이더.. 2010. 6. 23.
감자 캐기 감자 캐기 김 정 희 책가방 마루에 던지고 감자 캐러 나갔다 한 줄기에 달린 감자 몇 개인가 세다가 한 두렁 다 캔 누나에게 욕먹고, 할머니는 밭둑에 앉아 졸고 있는데 새참 가지러 간 엄마는 잠이 들었나? 하루 종일 감자 캐도 해는 안지고, 달도 별도 안 뜨고 낮만 있는 하짓날. 2010. 6. 22.
단 오 단 오 김 정 희 창포 삶아 우려 놓고 머리카락 풀며 친정엄니 생각하네. 닳아빠진 은비녀 쪽진 머리에 꽃무늬 한복 소매를 걷고, 치마 휘감은 허리엔 아버지 장가 올 적 빨간 넥타이. 제사가 낼 모렌데 조기 값 올라 두 마리 겨우 샀다고 우리나라 바다가 천지인데 조기는 씨가 말랐나 송곳니 빠진 자리 .. 2010. 6. 16.
사이 사이 김 정 희 울타리 양 쪽의 찔레와 장미 만나려고 얼마나 애를 쓰는지, 깐에는 힘껏 손을 뻗쳐도 조금 사이가 빈다. 바라보면 이어진 것 같아도 가까이 가면 한 뼘은 멀다. 모자라는 부분을 채우느라 봄이면 분주하고 눈바람 치면 감싸 안기도 하드만 다투어 피느라 서로를 밀어내고 가시를 곧추 세.. 2010. 6. 11.
가을소묘 가을소묘 김정희 하늘 끝 낡은 구름이 숲으로 내리고 문득, 창을 흔들며 어둠이 울적하게 서 있는 햇살 져 버린 우리들의 뜨락에 낙엽처럼 쓸쓸히 앉아 볼거나. 지친 우리들 무릎 위로 바람이 낙엽과 함께 쌓인다. 손을 뻗치면 한 움큼 가득한 낙엽 조각들 그것으로 우리 겨울을 막아볼까? 이리저리 엮.. 2010. 6.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