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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건너는 코끼리, 김안 바다를 건너는 코끼리 — 유미에게 뱃머리를 부르던 푸른 달도 가라앉은 밤, 코끼리는 바다의 불안한 살결을 발라내 입 안에 넣습니다. 얇게 저민, 바다의 살이 퍼질 때 그 많던 배들은 이제 어디로 갔습니까. 코끼리는 홀로 남아 눈을 감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부르려면 어떻게 해.. 2011. 12. 25.
의심, 우대식 의심 우대식 사람은 참말로 알 수 없는 것이어서 신께서 내게 옷 한 벌 지어주셨다. 의심이라는 환한 옷,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잠을 잘 때도 벗지 않는다. 견고한 이 한 벌의 옷을 입고 사람을 만나고 술을 마신다. 나는 너를 의심한다. 잠들지 못하는 밤을 위해 의심이 내 등을 다.. 2011. 12. 25.
[스크랩] [2011년 창비] 돼지들 외 3편/ 이지호 [창작과비평 2011년 신인상 당선작] 돼지들 외 3편 이지호 어느 날 돼지들이 사라졌다. 노란 우의를 입은 사나이가 피리를 불었다고 했다. 꽥꽥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돼지들이 따라나섰다고 했다. 돼지를 몰고 가는 바람의 목관에 몇 개의 구멍이 있었다고 했다. 그 구멍 속으로 .. 2011. 12. 17.
노벨문학상 2011수상작,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서곡 깨어남은 꿈으로부터의 낙하산 강하.. 숨막히는 소용돌이에서 자유를 얻은 여행자는 아침의 녹색 지도 쪽으로 하강한다. 사물들이 확 불붙는다. 퍼덕이는 종달새의 시점에서 여행자는 나무들의 거대한 뿌리 체계를, 지하의 샹들리에 가지들을 본다. 그러나 땅 위엔 녹음, 열.. 2011. 11. 3.
백로도 덥다 백로도 덥다 김정희 백로 한 마리 시멘트 보堡 위를 긴 다리로 토박토박 걸어가다가 물살 센 터진 보堡 옆구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날개 끄트머리 살짝 팔랑이며 닿을 듯 폴짝 뛰어 넘는다 새라고 펄펄 나는 줄만 알았더니 힘을 줄이려 뛰기도 하는구나. 전들 꾀가 없을까나 뙤약볕에 날개 한 쪽 펴.. 2011. 9. 18.
삼류들, 이재무 삼류들 / 이재무 삼류는 자신이 삼류인 줄 모른다 삼류는 간택해준 일류에게, 그것을 영예로 알고 기꺼이 자발적 헌신과 복종을 실천한다 내용 없는 완장 차고 설치는 삼류는 알고 보면 지독하게 열등의식을 앓아온 자이다 삼류가 가방 끈에 끝없이, 유난 떨며 집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것이 성희.. 2011. 8. 23.
서역 길, 양승준 서역 길 양승준 내 그늘진 영혼의 쉼터엔 순례자들의 빈자리를 어둠으로 채워 주는 사막 하나 있었네 아득한 일몰의 끝, 길은 보이지 않아도 밤이면 늘 물푸레나무 같은 달빛 한 자락 떠올라 늙은 낙타를 어루만져 주었네 알 알이슬람 알라께 나를 맡기고 또다시 메카를 향해 무릎 꿇는 이 시간, 사는 .. 2011. 6. 25.
순례자의 꿈, 한석호 순례자의 잠 한석호 시간은 저녁의 호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무거운 신발을 벗는다. 거룩한 자여, 오월은 푸른 장미 향기로 그윽한가 길은 저만치 수구水口를 따라 휘어지고 있다 보리의 술렁임이 깊어질 때 일몰은 치맛자락을 끌고 내려오고 나는 물끄러미 강물에 발을 담근다 그러면 세상의 슬픔.. 2011. 5. 24.
아득타, 황동규 아득타! 황동규 예수는 33세로 어느덧 세상 떠나고 이젠 어쩔 수 없이 80세까지 겨웁게 황톳길 걸어 적멸한 불타의 뒤꿈치 좇아가는 길. 30대 초반 나무에도 다람쥐에도 성벽 여기저기 입혀지는 돌옷<地衣>데도 뛰놀던 저 지구의 핏줄 십자가에 오른 예수는 보았을까. 저 아래 뒹구는 손도끼 곁에서 .. 2011. 4.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