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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장 김 장 김정희 배추가 싸다고 옆집 달래네는 갈아엎었다. 오빠랑 나는 배추 아까워 밭머리를 오락가락 촐싹대었다. 달래 아버지가 우릴 보더니 마음대로 가져가란다. 세발이 리어카에 스무 포기 싣고 오며 팔이 다 빠졌다. 우리 집에도 김장 한다. 소금에 절이고, 무 채 썰고, 고춧가루 팍팍 넣어서 빨간.. 2009. 11. 7.
깨 도둑 깨 도둑 김정희 오래 전, 나의 할아버지가 어린 날 붙들고는 이런저런 말씀 하시다가, 니 애비는 도둑이다. 하더이다. 연유를 물어보니, 어느 볕 좋은 가을날, 추수한 논에 쌀알이라도 주워 볼까 어정거리고 있었는데, 깨밭의 도리깨질 하던 젊은 아버지의 힘찬 팔뚝이 펄떡거리며 가을날을 어지럽히고.. 2009. 11. 4.
위 안 (慰 安) 위 안 (慰 安) 김정희 길을 걷다가 문득 돌아 본 그 곳에 버려진 나의 꿈들이 있다. 그것들은 구겨지고, 찢어지고, 부서져, 처음의 그것인지 알아 볼 수 없다. 소리를 내어 불러본다. 한 조각이 쓰레기통에서 대답한다. 더러워 주울 수 없다. 다른 한 조각은 전봇대 위에서 내려다본다. 너무 높아 올라갈 .. 2009. 11. 3.
한 로 (寒 露) 한 로 (寒 露) 김정희 윗마을의 항우장사 최순덕 여사, 사시사철 빨강 내복 하나로 굳건히 견디며, 이 집 일 저 집 일 마다 않고, 수시로 돈 벌어 밭을 사서는 이천 평 너른 밭에 고추를 심었다네. 하나 일군 자식은 늙다리 팔삭 동이, 마음 하나는 최고인데 초상집에서도 웃는 놈이라, 쌔빠지게 모은 돈 .. 2009. 10. 24.
남겨진 삶 (진우의 아내를 보내면서) 남겨진 삶 김정희 죽은 이들이 머문다는 그 곳 죽어서 간다는 그 곳. 잘 있으니 걱정마라 누가 전화 한 통 해 주었으면 좋겠다. 남겨진 이들이 슬프디 슬프게 통곡할 때, 아무 탈 없이 지내고 있으니 잘 있다가 나중에 만나자, 소식 딱 한 번만 전해 주면 참말로 좋겠다. 부엌에도, 마당에도, 화분에도, .. 2009. 10. 21.
고래의 꿈 고래의 꿈 송 찬 호 나는 늘 고래의 꿈을 꾼다 언젠가 고래를 만나면 그에게 줄 물을 내뿜는 작은 화분 하나도 키우고 있다 깊은 밤 나는 심해의 고래 방송국에 주파수를 맞추고 그들이 동료를 부르거나 먹이를 찾을 때 노래하는 길고 아름다운 허밍에 귀 기울이곤 한다 맑은 날이면 아득히 망원경 코.. 2009. 10. 16.
아기와 강아지 아기와 강아지 김정희 우리 집 강아지는 아기랑 똑같이 배를 벌렁 내 놓고, 드르릉 쿨쿨 한나절 잘도 자네. 둘이 마주보며, 옹알옹알 왈왈. 아기는 강아지 나라 말 알아듣고, 강아지는 아기 나라 말 알아듣고, 두 나라 말 다 못 알아듣는 나는 갸우뚱 갸우뚱. 2009. 10. 16.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의 나라 김정희 그가 서랍 깊숙이 말(言)을 감춰 두고 한밤중 어쩌다 속모를 소리 중얼 거리며 가끔 웃으면, 악보가 없는 허공에 대고 춤추는 음표를 보는지, 혹여 그가 노래를 할 즈음, 그의 눈동자가 제일 먼저 그 나라로 들어갔다. 눈이 바라보는 그 먼 곳을 찾으려고 뒤따라 뛰어가면 문은 굳.. 2009. 10. 12.
入 冬 入 冬 김정희 그가 서랍 깊숙이 말(言)을 감춰 두고 한밤중 어쩌다 속모를 소리 중얼 거리며 가끔 웃으면, 악보가 없는 허공에 대고 춤추는 음표를 보는지, 혹여 그가 노래를 할 즈음, 그의 눈동자가 제일 먼저 그 나라로 들어갔다. 눈이 바라보는 그 먼 곳을 찾으려고 뒤따라 뛰어가면 문은 굳게 닫혔다.. 2009. 10.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