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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장날 오늘은 장날 김 정희 물 먹은 삼월 눈쯤이야, 젊은 놈 비웃으며 눈삽 찔러 넣다 허리 나갔다고. 한번 간 허리 이리저리 돌려 보아도 오줌 눌 때마다 오금이 저린다고, 침 맞으러 간다면서 펄펄 날아가네. 한번 가면 안 오는 게 허리뿐이랴, 젊어서 품은 계집, 버릴 줄 몰라 한 세월 다 보내고 허리까지 주.. 2009. 4. 2.
우리 마을 우리 마을 김 정희 노인네 하나 쯤 사라진다고 세상이 뒤집어 지진 않더라고, 마을 입구 백년 된 은행나무가 일러 주던데요. 개울 건너 자식이 지어 준 기와 멋들어진 집에 고려장 사는 사시사철 털모자 쓴 할머니 돌밭 일구고, 아들 며느리 온다고 마루 반짝반짝 닦던 그니. 어느 봄볕 좋던 날 굴뚝에 .. 2009. 3. 28.
빈 집 빈 집 김 정희 학교 가는 길 손 흔드는 사람 없이 노오란 개나리 폭포처럼 쏟아지고 산수유 바람결에 솜털처럼 날아가는 지게와 괭이만 마당 구석에서 못 오시는 할아버지 기다리는 개울 가 빈 집, 텅 빈 장독대에 봄만 노랗게 남았습니다. 농촌 지역에 빈 집이 늘어갑니다. 연로하신 분들이 돌아가시.. 2009. 3. 25.
담쟁이 담쟁이 김 정 희 초록 핏줄 사이로 슬그머니 새어나와 담장 기웃거리며 자리 잡는 질긴 손바닥. 무얼 그리 엿보는 게야? 도둑놈 심보 같으니라구! 2009. 3. 23.
삼 월 삼 월 김 정희 햇빛 웃자란 보리밭 등 굽은 할머니 겨울을 캐고 있다. 낡은 수건 머리에 질끈 묶고, 긴 잠에 빠진 겨울 호미로 후적인다. 겨울은 캐서 뭐 하실려나? 바람이 지나가다 설핏 물으니 할머니 호미 날로 겨울 등짝 긁으며 이놈의 겨울 모조리 캐다 가마솥 장작불에 뭉그리 지져 시래기 달듯이 .. 2009. 3. 10.
안 개 안 개 김 정희 안개가 소문처럼 번지고 있다. 개울 건너 윤씨네 막내딸, 처녀가 애 가졌다고, 처음엔 등 두드리고 손가락 따더니, 나중엔 그것이 입덧 아니던가? 기던가? 장날에 노인네들 차 태워 주었더니 홀까닥 남의 집 뒤집어 놓네. 안개를 조심해, 안개 낀 들판을 조심해. 소문이 안개 속에 똬리를 .. 2009. 3. 5.
[스크랩] 좋은시조쓰기 좋은 시조는 울림을 동반하는 감동이 있어야 한다. 시조의 감동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첫째는 묘사와 진술의 절묘한 조화에서 비롯된다. 묘사의 생명은 산뜻함에 있고 진술의 포인트는 생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있다. 중요한 것은 둘 다 진부하거나 구태의연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특히 시적 대상.. 2009. 3. 3.
봄 눈 봄 눈 김 정희 밤새 길 못 찾아 떠돌던 욕심 찌꺼기 싸리비로 쓸어내는 동자 스님 까까머리 위에 하품 묻어 있는 눈썹 위에 하얀 나비 같은 봄눈이 내린다. 뒷마당에 묵혀 있던 김장 장독위에도 강아지가 물고 간 털신 안에도 민들레 홀씨 같은 봄눈은 내려, 눈 내리는 하늘 보며 눈 보다 더 하얀 수염을.. 2009. 2. 24.
기가 차게 멋진 詩 - 간통 (문인수) 간통 문인수 이녁의 허리가 갈수록 부실했다. 소문의 꼬리는 길었다. 검은 윤기가 흘렀다. 선무당네는 삼단 같은 머리채를 곱게 빗어 쪽지고 동백기름을 바르고 다녔다. 언제나 발끝 쪽으로 눈 내리깔고 다녔다. 어느 날 이녁은 또 샐 녘에사 들어왔다. 입은 채로 떨어지더니 코를 골았다. 소리 죽여 일.. 2009. 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