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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엔 백석의 시를,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백 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 2012. 12. 12.
눈 오는 저녁 눈 오는 저녁 김정희 남의 집 살이 삼십 년 하고 텃밭 딸린 작은 집 하나 장만한 눈 오는 저녁, 한 뼘 어깨 위에 휘어진 세월 짊어지고 어머니, 백 년 된 강둑 따라 집으로 오신다. 물이 뭐라더냐? 산이 뭐라더냐? 홀로 호령하며 옆구리에 소주 차고 왼쪽만 닳은 신발을 터덜거리며, 눈 내리는 강둑에 오줌을 누신다. 오줌은 강물로 흘러가고 얼어 붙은 강둑에 안개는 피어 올라 안개 속 어머니, 눈 맞으며 우신다. 노래를 부를까, 춤을 춰 볼까 어머니 돌아오시는 강둑에 서서, 엉거주춤 끌어올려 반은 더 까발린 얼어붙은 엉덩이 감싸안으며 서른에 과부 된 어머니 등에 업는다 백 년 된 강둑도 함께 업는다. 오래 전에 지은 시 하나 눈 오는 저녁에 올립니다. 2012. 12. 5.
물들다 물들다 김정희 안개가 자욱한 새벽, 얼어붙은 배추가 지상의 색깔을 빨아먹고 있다 나는 문득 배추를 뽑으려다 무채색으로 널브러진 가을을 본다 밭둑의 고얌나무 뒤에 숨어 회색으로 쏘아보던 겨울은 배추의 초록색으로 스며들고 미끄러지지 말라고 빨강 장갑 낀 나의 손에도 초록색이.. 2012. 11. 9.
안개 안 개 김정희 안개가 소문처럼 번지고 있다. 개울 건너 윤 씨네 막내딸, 처녀가 애 가졌다고, 처음엔 등 두드리고 손가락 따더니, 나중엔 그것이 입덧 아니던가? 기던가? 장날에 노인네들 차 태워 주었더니 홀까닥 남의 집 뒤집어 놓네. 안개를 조심해, 안개 낀 들판을 조심해. 소문이 안개 .. 2012. 11. 9.
스미다, 이병률 스미다/ 이병률 새벽이 되어 지도를 들추다가 울진이라는 지명에 울컥하여 차를 몬다 울진에 도착하니 밥냄새와 나란히 해가 뜨고 나무가 울창하여 울진이 됐다는 어부의 말에 참 이름도 잘 지었구나 싶어 또 울컥 해변 식당에서 아침밥을 시켜 먹으며 찌개냄비에서 생선뼈를 건져내다 .. 2012. 11. 7.
쓸쓸하고 장엄한 노래여, 기형도 쓸쓸하고 장엄한 노래여 기형도 가라, 어느덧 황혼이다 살아 있음도 살아 있지 않음도 이제는 용서할 때 구름이여, 지우다 만 어느 창백한 생애여 서럽지 않구나 어차피 우린 잠시 늦게 타다 푸시시 꺼질 몇 점 노을이었다 이제는 남은 햇빛 두어 폭마저 밤의 굵은 타래에 참혹히 감겨들.. 2012. 11. 7.
그 여자네 집, 김용택 그 여자네 집 김용택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 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운 집 어디 갔다가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 속에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 2012. 11. 6.
가을, 상림에서-마종기 가을, 상림에서 마종기 경상남도 함양군 긴 숲길의 어디쯤 당나라 시대의 존경과 고관직을 버리고 망해 가던 조국에 돌아 온 최치원의 구름이 오늘은 잡목 사이에 서서 바람을 잡고 있네. 그 가을 상림의 따뜻한 흙길을 걸으며, 구절초 몇 무더기로 피어 난 그를 만나느니, 비단 옷 벗고 .. 2012. 10. 29.
가을로 향하는 가지 않은 길 The Road Not Taken Robert Lee Frost(1874~1963)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 2012. 10.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