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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이성부 봄/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비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 2017. 3. 31.
마당을 헐다,김정희 마당을 헐다 김정희 한 귀퉁이 헐어서 담을 쌓다 돌이 지 멋대로 굴러 뒤뚱이다 노는 햇살에 바람을 넣고 주물럭거리다 햇살 한 판 깔고 돌 한 개 얹다 단단한 돌담 맨날 밥 먹고 인사도 안하는 고양이 슬쩍 발 올리고 높이를 가늠하다 스프링같은 몸짓에 낭창 햇살이 허리를 꺾고 그놈 걸어간 돌담 위 통 통 통 봄이 튀어오르다 겨울이 튕겨나가다. 2017. 3. 22.
사랑의 물리학, 김인육(펌) 1. 사랑의 물리학 - 김인육 Instagram 'sinzybyul' '사랑의 물리학'은 tvN 드라마 '도깨비' 속 공유가 직접 내레이션 한 그 시다. 사랑을 처음 경험한 남자의 마음을 정확히 비유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2. 눈 - 김소월 Instagram 'quokkajjang' 김소월 시인은 '진달래꽃', '초혼', '엄마야 누나야' 등 명.. 2016. 12. 18.
복제하다, 김정희 복제하다 김정희 새벽에 일어나 연탄을 갈다 두개골에 섞인 불순물의 농도만큼 다 탄 연탄재는 벌건 얼굴을 하고 있다 살아 있는 입안에 잠긴 질긴 말(言)들조차 오래전 연탄의 목숨 길이를 따라갈 수 없었다 밥과, 된장과, 수많은 볶음을 승화했던 세탁기에 맡긴 삶아야 할 욕지기와 전기.. 2016. 11. 23.
양수리를 지나며, 이무권 양수리를 지나며 두물머리, 經由地의 經由 地點, 마흔일곱 번째 이 별을 찾아왔다는 한 사내의 말을 믿는다면 한평생 고기잡이나 하면서 이곳을 지켰을 내 전생의 기억 때문일까 이생의 고향만큼 낯익어 보이는 풍경들이 나를 자주 불러들이는 곳 그 넓은 가슴으로 세상을 받아주던 연잎.. 2016. 11. 20.
역시, 또한 역시, 또한 김정희 나도 그들이었다 냉소를 띠고 팔장을 끼고 뒷짐을 지며 나도 그들과 함께 모른 척 했다 아이들이 옥상에서 삶을 버리고 노인들이 남은 길을 재촉하며 서럽게 울어도 짐짓 콧방귀를 끼며 나와는 상관 없다 히히거렸다 나도 그들과 같았다 팔을 벌리고 손을 흔들며 가랑.. 2016. 11. 7.
거대한 통-오폐수처리장- 거대한 통 -오폐수처리장- 김정희 한꺼번에 모우다 골골마다 터져 나오는 냄새를 좁은 구멍에서 나오는 찌꺼기들을 살아 있는 것들과 죽은 것들과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들도 함께 마구 집어넣고 씹고 씹어 긴 행렬을 따라 마침내 다다른 거대한 나라 땅 속 흰 통로를 따라 움직이는 물결 .. 2016. 10. 31.
타령 타령 김 정 희 아주까리 이파리 머리에 얹고 햇빛 가렸다고 주름을 못 가리는 할매 좀 보소. 덥다고 타박 말고 찬물 쓸 수 있어 여름이 좋다오 매미 울음 막바지 옥수수는 벌써 끝물 빨강 고추 마당 가득 널어놓고 자식들 줄 생각에 다들 끝이라도 다음을 기약하네 다음이 없는 할매 저 세.. 2016. 10. 15.
오늘은 장날 오늘은 장날 김 정 희 물 먹은 삼월 눈쯤이야, 젊은 놈 비웃으며 눈삽 찔러 넣다 허리 나갔다고 한번 간 허리 이리저리 돌려 보아도 오줌 눌 때마다 오금이 저린다고 침 맞으러 간다면서 펄펄 날아가네. 한번 가면 안 오는 게 허리뿐이랴 젊어서 품은 계집 버릴 줄 몰라 한 세월 다 보내고 .. 2016. 10. 15.